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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의 삶과 화담 서경덕

by 더 리치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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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그림 미인도

황진이의 삶과 화담서경덕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황진이의 출신부터 황진이의 기녀생활과 화담서경덕의 제자가 된 황진이, 그녀의 죽음과 사후이야기까지 전해드리겠습니다.

 

황진이의 출신

 
황진이는 개성의 양반가문 황진사와 기생출신 진현금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였습니다.
황진이의 유년시절은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기생출신이므로  본처의 구박이 더욱 심했고 그녀는 서녀로 차별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또 그녀의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시력을 잃어가자 황진사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황진이를 사랑했던 한 총각이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모습을 보게도 됩니다.
황진이는 당시 종모법에 따라 다른 대안 없이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출신이었습니다.
 
 

황진이는 조선의 페미니스트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중심 신분사회인 유교국가 조선에서 그녀는 명월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이 됩니다
그녀는 미색을 보이며 남자들에게 다가가는 기생들과는 달리 타고난 절세미인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는 시,서,화에 능한 학식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팔방미인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증손자 벽계수(이종숙)를  유혹하여 그의 콧대를 꺾어버립니다.  자신의 동료기생이 벽계수에게몸과 마음을 주었는데 버림받아 크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랍니다.
또 생불이란 불리는 지족스님을 유혹하여 파계시켜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여자를 품기위한 남성들을 역이용하여 비판하고 사대부들의 이중성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조선의 페미니스트였습니다.

계약결혼한  황진이

 
또 당시 사회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계약결혼도 합니다.
한양제일의 소리꾼 이사종을 만나 딱 6년간만 살아보기로  동거에 들어갑니다.
각각의 집에서 3년씩 지내면서 상대편 가족들까지 알뜰히 보살피고 사랑의 약조시간이 다가오자 미련 없이 떠나기도합니다
 남정네에게 매달려 사랑을 구걸했던 여자가 아니라 바람처럼 구름처럼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면서 사람에게도 사회적 관념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황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여자였습니다.
당대 최고 엘리트 대제학(대학총장)까지 지낸 소세양과는 30일만 사랑을 나누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한 30일이되자 황진이가 먼저 소세양의 마음을 흔들기도 합니다.
아래의 시는 그녀가 소세양이 떠나는 날 지은 시라고 합니다.
이 시를  받은 소세양은 그녀 집에서 며칠 더 지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달빛 아래 뜰에는  오동잎 모두 지고
찬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다락은 높아  하늘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없네

흐르는 물소리는 차기가 비파소리
피리에 감겨드는 그윽한 매화향기

내일 아침 눈물지며 이별하고 나면
님 그린 연모의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네

 

화담서경덕의 제자가 된 황진이

황진이는 화담서경덕을 만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벽계수를 향해 던졌던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또는 소복을 입고 생불이라 일컫는 지족스님을 파계시켰던  황진이였습니다.
 
미모와 학문과 예술성까지 두루 갖춘 종합예술인인 황진이는  화담을 존경하고 10여 년가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서경덕의 무엇이 황진이를 변하게 했을까요? 
화담선생의 말씀 중 " 하늘아래 사람이 사는 이치가 똑같다" 모든 것을 두루 갖춘 황진이라지만 천한 신분인 기생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많은 사내들은 그녀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인을 품고자 하는 욕망만 있지 않았을까요? 
황진이는  화담을 통해 봉건적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고 마음깊이 위로받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1546년 명종 1년  화담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존경했던 스승  화담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기생으로서의 일을 접고 유랑을 떠납니다.
3년 동안  화담서경덕의 자취를 찾아 화담이 자주 다니던 곳으로 유랑을 다닙니다. 
그녀의 일생을 거쳐 자신을 알아준 단 한 사람 정신적 스승이자  최고의 남자로 간직한 것입니다.
 

황진이의 죽음

그녀의 나이 40 되던 어느 날 심하게 아파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절세미녀 황진이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주변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살아생전 세상을 어지럽히고 남자들을 애태우게 한 죄가 있으니, 나의 시신은 절대 관을 쓰지 말고 개성밖에 버려라, 내 육신은 버러지의 밥이 되도록 말이다. 하여 나같이 사내들의 마음을 가벼이 여기고 이용하는 여인들이 경계를 삼을 수 있게 해 주어라"
 
실제로 <초한당문집>에는 사람들이 황진이의 시체를 그대로 내다 버렸는데 한 남자가 거두어 묻어 주었고, 실제로 장단입구 정현 남쪽(황해도 판문군)에 황진이 묘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황진이 사후 일화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평양감사 임백호가 개성을 지나다 그녀의 무덤을 발견하고 슬피 생각하며 그녀를 위해 시 한수를 읊습니다.
비록 황진이는 이 세상에 없지만 많은 사대부들에게 그녀의 미색은 불멸했던 모양입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지난다 누워난다
홍안을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혀난다
잘 잡고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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